사랑을 증오로 바꾸는 ‘공정성 위반’

입력 2022-10-06 17:55   수정 2022-10-06 17:56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영화 ‘봄날은 간다’의 명대사이다. 순수한 남자 주인공 유지태가 헤어지자는 연인 이영애에게 하는 말이다. 아마도 사랑이 절대적이고 영원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다음 사례들을 보자.



#1 망치를 든 할머니
“내가 망치를 들고 가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난 정말 화났었습니다.” 2007년 8월 어느 날, 컴캐스트(Comcast)라는 케이블 회사에 찾아가 난동을 부리고 미국 전역에서 유명해진 사람의 말이다. 주인공은 다름아니라 아주 점잖게 생긴 75세 할머니 모나 쇼(Mona Shaw)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모나 쇼는 컴캐스트사에 전화, 인터넷, 케이블의 통합 서비스를 주문했다. 그녀는 설치하기로 예약된 월요일 하루 종일 기다렸다. 그렇지만 설치 기사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틀 뒤 수요일이 되어서야 기사가 왔다. 그런데 기사는 일부 서비스만 개통하고 홀연 사라졌다. 금요일에는 그나마 개통된 서비스를 포함해 모든 서비스가 중지되었다.

전화마저 작동이 안되다 보니 그녀는 항의하러 대리점에 가 매니저를 찾았다. 밖에서 기다리라는 직원의 말에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야외에서 2시간이나 기다렸다. 그리고는 매니저가 퇴근해 만날 수 없다고 통보 받았다. 전화도 케이블도 인터넷도 없이 주말을 보낸 그녀는 월요일이 되자 바로 망치를 들고 대리점을 찾아가 키보드와 전화기를 때려 부순 것이다. 그녀는 벌금 345달러, 집행유예 3개월, 접근금지 1년을 선고받는다.

이 사건은 순식간에 전국적으로 알려진다. 그녀는 각종 언론매체에 등장하며 일약 유명 스타(?)가 된다. ‘컴캐스트는 사라져야 한다(컴캐스트 머스트 다이 닷컴)’ 등 여러 웹사이트가 생기며 컴캐스트에 대한 비난이 폭주하게 된다. 아울러 컴캐스트사의 이미지와 매출이 큰 타격을 입게 된다.

#2 파손된 기타
유나이티드 항공(United Air)을 이용한 무명가수 데이브 캐럴(Dave Caroll)은 수하물을 운반하던 직원이 자신의 기타를 함부로 집어 던지는 것을 목격했다. 아니나 다를까, 목적지에 도착해 보니 기타가 파손된 것을 발견했다. 그는 항공사에 손상된 3500달러짜리 기타에 대해 보상을 요구했다. 하지만 모든 관계자들이 하나 같이 자기 책임이 아니라며 회피했다. 결국 이 문제는 9개월 동안이나 해결되지 않았고 항공사는 끝내 보상 못하겠다고 통보했다.

회사의 무책임한 대응에 데이브는 분노했다. 직접 회사를 응징하기로 결심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는 “유나이티드는 기타를 부순다(United Breaks Guitars)”라는 제목의 뮤직 비디오를 제작해 유튜브에 올렸다. 제작비는 단돈 150달러, 그렇지만 파급효과는 엄청났다.



이 뮤직 비디오는 나흘 만에 100만 건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입소문을 타고 수많은 패러디 영상들이 올라왔다. 2주 만에 유나이티드 항공의 주가는 10% 하락하고 시가총액 1억8000만 달러가 증발했다. 이후 유나이티드 항공은 수많은 사람들의 엄청난 조롱에 시달리게 된다.

#3 호박즙 파동
이런 사건이 외국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한 때 굉장한 사랑을 받았으나, 한 순간에 팬들이 안티로 돌아서며 신뢰를 잃은 국내 쇼핑몰을 살펴보자. 이 쇼핑몰은 소셜네트워크 상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인플루언서이자 해당 쇼핑몰의 대표 및 모델이던 인물을 중심으로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며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쇼핑몰에서 구매한 호박즙에 곰팡이가 있었다는 후기가 남겨지며 사건은 시작된다. 그런데 정작 고객의 화를 돋운 것은 호박즙의 곰팡이라기보다는, 자신의 불평에 대한 쇼핑몰 측의 불만족스러운 대처였다. 고객은 전액 환불을 원했으나, 먹고 남은 호박즙만 환불 가능하다고 한 것이다.

다른 것도 아니고 먹는 것에서 곰팡이가 나왔는데 남은 호박즙만 환불하겠다고? 화가 치민 고객은 곰팡이가 핀 호박즙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그리고 소셜네트워크 상에 쇼핑몰에 대한 부정적인 후기들을 선별하여 게시하는 계정을 개설하는 등, 쇼핑몰에 타격을 줄 만한 보복 행동을 하게 된다. 이것들이 각종 커뮤니티에 퍼 날려진다. 결국은 많은 팬들의 신뢰를 잃게 되는 치명적인 계기가 된다.

고객이 분노하는 이유는?
사랑은 변한다. 연인간 사랑이 식거나 증오가 되기도 한다. 결코 영화나 드라마에만 존재하는 상황이 아니다. 기업과 고객 사이에서도 사랑이 분노나 증오로 바뀔 수 있다. 심지어 한 때 사랑했던 대상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보복 행동을 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자신에게는 아무런 이득이 없더라도 시간과 비용을 들여 가면서 말이다. 왜 고객이 이처럼 분노할까? 무엇이 사랑을 증오로 바꿀까?

사랑이 증오로 바뀌는 주된 이유는 배신감이다. 기업 혹은 브랜드가 고객과의 관계에 있어서 공정성을 의도적으로 위반했다고 여겨질 때 배신감이 발생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친한 관계일수록 이런 배신감이 증폭된다는 점이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면 더 아픈 법이다. 이렇게 배신감을 느낀 팬이 안티가 될 수 있다. 지역 밀착이 강한 프로스포츠에서 팀이 연고지를 이전했을 때 기존 팬들이 등 돌리는 것도 비슷한 현상이다.

고객이 느끼는 공정성(fairness)은 세 가지 차원으로 설명할 수 있다. 고객이 받게 되는 결과나 보상과 관련된 분배적 공정성(distributive fairness), 고객 불만을 처리하는 방법 및 정책과 관련된 절차적 공정성(procedural fairness), 절차가 진행될 때 직원이 고객을 대하는 방식과 관련된 상호작용적 공정성(interactional fairness)이다. 연구에 의하면 고객은 분배적 공정성과 절차적 공정성이 위반되었을 때 가장 큰 배신감을 느끼는 것으로 밝혀졌다. 배신감은 다양한 보복 행동으로 이어진다. 공정성을 중시하는 MZ세대를 고객이나 직원으로 대해야 하는 기업에게 주는 시사점이 크다.

모나 쇼, 데이브 캐럴, 호박즙 고객. 모두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해 분배적 공정성이 파괴되었다고 느낀 것이다. 게다가 자신이 제기한 불만에 대한 회사의 대응이 절차적으로 공정하지 않다고 인식하고 분노한 것이다. 이 분노가 회사 기물을 파손하거나 소셜네트워크 상에서 회사 이미지를 손상하는 보복행동으로 이어진 것이다.

사랑은 변한다. 때로는 사랑이 증오로 바뀔 수 있다. 연인 사이에서만이 아니라 기업과 고객의 사이에서도. 그리고 기업의 ‘봄날은 간다.’

※ 한경닷컴에서 한경 CMO 인사이트 구독 신청을 하시면, 이유재 석좌교수의 글과 다른 콘텐츠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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